「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무대인 제3신도쿄시는 가공의 도시가 아닙니다. 작중 지명과 지형은 가나가와현 하코네를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고, 네르프 본부가 묻혀 있는 지오프론트는 아시노 호 아래에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성지순례는 다른 코스와 결이 다릅니다. 화면 속 한 컷을 찾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도시 하나가 통째로 얹혀 있는 산과 호수를 도는 여행입니다. 하코네 등산철도와 로프웨이, 해적선 유람선을 갈아타며 한 바퀴 돌면 그 지도가 몸에 들어옵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신주쿠 출발 — 로망스카 한 대면 닿는다
하코네는 도쿄에서 신주쿠발 오다큐 로망스카로 한 번에 갑니다. 하코네유모토까지 약 1시간 30분, 전석 지정석이라 자리 걱정이 없습니다.
이 코스는 하코네 프리패스를 사는 편이 거의 무조건 이득입니다. 등산철도·케이블카·로프웨이·유람선·버스가 모두 묶여 있어, 아래 코스를 그대로 도는 데 필요한 교통이 전부 포함됩니다. 하코네는 시계 방향(유모토 → 고라 → 오와쿠다니 → 토우겐다이 → 아시노코 → 유모토) 한 바퀴가 정석입니다.
1구간 · 관문 —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
1하코네유모토역
하코네 여행이 시작되는 역이자, 산속 도시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역을 나서면 바로 온천 상점가라 여기서 요기를 하고 등산철도로 갈아타면 됩니다. 등산철도는 스위치백으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산을 오르는데, 이 오르막 자체가 "지상으로 올라온 도시"라는 작품의 설정과 겹쳐 읽힙니다.
2긴토키 신사
하코네 산자락에 자리한 신사입니다. 관광 동선에서 살짝 비켜나 있어 늘 조용하고,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전에 한 박자 쉬어 가기 좋은 자리입니다.
2구간 · 화산 — 연기가 오르는 산
3오와쿠다니
로프웨이가 계곡 바로 위를 지나갑니다. 발밑에서 흰 유황 연기가 끊임없이 솟고 바위는 누렇게 삭아 있습니다. 사도가 강림하기 직전의 그 불온한 공기를 실제 지형에서 만나는 순간이라, 이 코스에서 인상이 가장 강한 자리입니다.
주의 · 화산 가스와 통제
오와쿠다니는 활화산 지대입니다. 화산 가스 농도에 따라 로프웨이 운행과 산책로 출입이 예고 없이 제한됩니다. 호흡기 질환이 있다면 체류를 짧게 하고, 방문 당일 아침에 운행 정보를 반드시 확인하세요. 통제선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은 기본입니다.
4토우겐다이
로프웨이가 아시노 호에 닿는 지점입니다. 화산에서 호수로 풍경이 한 번에 바뀌는 자리라, 여기서 잠시 서서 뒤를 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산등성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유람선으로 갈아타는 곳이기도 합니다.
3구간 · 호수 — 지오프론트 위를 지나다
5아시노 호
작중 제3신도쿄시가 내려다보는 그 호수입니다. 네르프 본부와 지오프론트는 이 물 아래에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 한가운데를 지나며 산 쪽을 돌아보면, 도시가 지상으로 솟아오르던 그 장면의 시점이 자연스럽게 겹칩니다. 날이 맑으면 후지산까지 보입니다.
6센고쿠하라 중학교 터
아시노 호 북쪽 센고쿠하라 일대입니다. 지금은 억새 들판과 조용한 고원 마을이 이어질 뿐, 화면 속 도시의 흔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텅 빈 느낌이 이 작품과 가장 잘 맞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도시를 하나 얹어 상상해 보는 것이 이 코스의 마지막 순서입니다.
실전 팁
기간 — 한 바퀴 도는 데 당일치기로도 가능하지만 1박 2일을 권합니다. 로프웨이와 유람선은 운행 시간이 이르게 끝나 하루에 몰아넣으면 계속 시계를 보게 됩니다. 하코네는 온천이 본업인 동네이기도 하니 하룻밤 묵는 값을 합니다.
교통 — 하코네 프리패스로 등산철도·케이블카·로프웨이·유람선·버스를 전부 해결합니다. 렌터카는 오히려 불리합니다 — 순환 코스라 차를 세워 둔 자리로 되돌아와야 하고, 성수기 산길 주차는 만만치 않습니다.
계절 — 겨울에는 안개와 강풍으로 로프웨이가 자주 멈춥니다. 후지산까지 노린다면 공기가 맑은 늦가을에서 초겨울이 확률이 높습니다.
매너 — 화산 지대의 통제선과 안내 표지를 반드시 따르고, 온천 상점가와 신사에서는 주민과 참배객의 통행을 막지 않도록 합니다. 성지순례가 오래 환영받으려면 순례자의 태도가 곧 다음 방문자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맺음 —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도시 하나를 통째로 지어 올렸다가 다시 무너뜨리는 이야기입니다. 하코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그 거대한 도시가 실은 이 조용한 산과 호수 위에 겹쳐 그려진 것이었다는 사실이 오래 남습니다.